기증자료 모아

형법의 낙태죄 및 모자보건법 제정, 변천, 처벌실태

임신한 여성이 낙태를 한 경우 처벌되기 시작한 것은 1912년 「조선형사령」에 의거해 일본형법이 조선에 적용되면서부터다. 청일전쟁 전후에 병사가 될 태아를 죽이는 것은 범죄라는 군국주의 사상을 기반으로, 독일 형법에 따라 낙태죄를 더욱 엄격히 규정한 1907년 개정 형법 조문이 들어온 것이다. 식민지 조선은 일본의 산아제한 정책이나 1941년 「국민우생법」 제정의 흐름을 동시대적으로 따라가긴 했으나, 본국과 달리 법률 개정이 이뤄지거나 국민우생법이 적용되진 않았다.

 

식민지기 조문은 해방 후 1953년 최초의 형법전이 시행될 때까지 존속했다. 1947년 구성된 법전편찬위원회는 형법 초안에 자기낙태죄, 동의낙태죄, 업무상동의낙태죄 모두를 처벌 대상으로 규정했다. 부동의낙태죄가 추가된 것은 1952년 법제사법위원회에서다. 1953년 국회에서 이 수정안과 낙태죄삭제안 중 무엇을 통과시킬지 인구정책적 고려를 통한 심의가 이루어졌고, 전자가 채택되었다. 그 결과 1953년 9월 18일 제정된 형법은 제269조와 제270조에서 낙태한 여성과 의사 등에 대한 처벌을 규정하였다. 

 

<형법>

제27장 낙태의 죄

제269조(낙태)

① 부녀가 약물 기타 방법으로 낙태한 때에는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개정 1995. 12. 29.>

② 부녀의 촉탁 또는 승낙을 받어 낙태하게 한 자도 제1항의 형과 같다. <개정 1995. 12. 29.>

③ 제2항의 죄를 범하여 부녀를 상해에 이르게 한때에는 3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 사망에 이르게 한때에는 7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 <개정 1995. 12. 29.>

제270조(의사 등의 낙태, 부동의낙태)

① 의사, 한의사, 조산사, 약제사 또는 약종상이 부녀의 촉탁 또는 승낙을 받어 낙태하게 한 때에는 2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 <개정 1995. 12. 29.>

② 부녀의 촉탁 또는 승낙없이 낙태하게 한 자는 3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

③ 제1항 또는 제2항의 죄를 범하여 부녀를 상해에 이르게 한때에는 5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 사망에 이르게 한때에는 10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 <개정 1995. 12. 29.>

④ 전 3항의 경우에는 7년 이하의 자격정지를 병과한다.

[헌법불합치, 2017헌바127, 2019. 4. 11. 형법(1995. 12. 29. 법률 제5057호로 개정된 것) 제269조 제1항, 제270조 제1항 중 ‘의사’에 관한 부분은 모두 헌법에 합치되지 아니한다. 위 조항들은 2020. 12. 31.을 시한으로 입법자가 개정할 때까지 계속 적용된다]

 

1960년대 박정희 정권은 ‘조국 근대화’라는 목표 아래 합리적인 근대적 생활 태도를 가족생활에 적용하는 ‘가족계획’을 내세웠다. 냉전 속 서구 선진국들은 아시아의 폭발적 인구 성장에 대한 두려움과 빈곤화로 인한 공산주의 세력확장을 저지하기 위해 제3세계 정부들이 인구통제정책을 수용할 시 재정적·기술적·지적 원조를 약속했다. 박정희 정권은 이를 통해 ‘경제개발5개년계획’의 일부로 <가족계획사업>을 시행했고, 대외적으로 피임을 표방했으나 실질적으로는 낙태 시술을 권장했다. 모자보건법 제정이 추진된 것은 이 와중이었고, 그 사이 보건사회부 관료들의 인공임신중절수술 합법화안은 여러 차례 제출되었으나 반대에 부딪혀 보류·철회되었다. 1972년 유신으로 국회가 해산된 후에서야 비상국무회의에서 제한적 낙태를 허용한 모자보건법이 제정되었다. 1973년 2월 8일 제정된 모자보건법은 인공임신중절의 허용한계를 규정하였다.

 

<모자보건법>

제14조(인공임신중절수술의 허용한계) [전문개정 2009. 1. 7.]

① 의사는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되는 경우에만 본인과 배우자(사실상의 혼인관계에 있는 사람을 포함한다. 이하 같다)의 동의를 받아 인공임신중절수술을 할 수 있다.

1. 본인이나 배우자가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우생학적(優生學的) 또는 유전학적 정신장애나 신체질환이 있는 경우

2. 본인이나 배우자가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전염성 질환이 있는 경우

3. 강간 또는 준강간(準强姦)에 의하여 임신된 경우

4. 법률상 혼인할 수 없는 혈족 또는 인척 간에 임신된 경우

5. 임신의 지속이 보건의학적 이유로 모체의 건강을 심각하게 해치고 있거나 해칠 우려가 있는 경우

② 제1항의 경우에 배우자의 사망ㆍ실종ㆍ행방불명, 그 밖에 부득이한 사유로 동의를 받을 수 없으면 본인의 동의만으로 그 수술을 할 수 있다.

③ 제1항의 경우 본인이나 배우자가 심신장애로 의사표시를 할 수 없을 때에는 그 친권자나 후견인의 동의로, 친권자나 후견인이 없을 때에는 부양의무자의 동의로 각각 그 동의를 갈음할 수 있다.

제28조(「형법」의 적용 배제) [전문개정 2009. 1. 7.]

이 법에 따른 인공임신중절수술을 받은 자와 수술을 한 자는 「형법」 제269조제1항ㆍ제2항 및 제270조제1항에도 불구하고 처벌하지 아니한다.

 

<모자보건법 시행령>

제15조(인공임신중절수술의 허용한계) [전문개정 2009. 7. 7.]

① 법 제14조에 따른 인공임신중절수술은 임신 24주일 이내인 사람만 할 수 있다.

② 법 제14조제1항제1호에 따라 인공임신중절수술을 할 수 있는 우생학적 또는 유전학적 정신장애나 신체질환은 연골무형성증, 낭성섬유증 및 그 밖의 유전성 질환으로서 그 질환이 태아에 미치는 위험성이 높은 질환으로 한다.

③ 법 제14조제1항제2호에 따라 인공임신중절수술을 할 수 있는 전염성 질환은 풍진, 톡소플라즈마증 및 그 밖에 의학적으로 태아에 미치는 위험성이 높은 전염성 질환으로 한다.

  

낙태죄와 모자보건법의 존재와 별개로, 인공임신중절수술은 널리 행해졌으며 기소와 입건은 드물었다. 실상 낙태죄는 입법목적을 달성하지 못하는 사문화(死文化)된 법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실정법은 수사와 재판의 규범으로서뿐 아니라 그 존재만으로 사회에 광범위하고 효과적인 영향을 주며 규범력으로 기능한다. , 수사와 처벌이 없을지라도 낙태가 불법이라는 인식을 심어주고, 낙태한 여성들에게 죄의식을 갖게 하는 방식으로 작동하는 것이다. 2000년 이후 본격적으로 펼쳐진 민간기구의 운동과 국가의 정책은 인공임신중절수술을 합법적으로 받기 어렵게 만들면서 큰 피해를 낳았다.

태아의 생명권이라는 담론이 재등장하고, 2009프로라이프 의사회라는 민간기구가 국가 대신 전면에 나서며 객관적이고 전문적인의료 지식이 낙태죄의 실효적 집행을 이끌게 된다. 이어 2012년 헌법재판소의 낙태죄 합헌결정은 낙태죄를 현실에 되살렸고, 2016년 보건복지부는 「의료관계 행정처분 규칙 개정안」을 발표해 인공임신중절을 비도덕적 진료행위로 명시하고 이를 시행한 의사 자격정지 기간을 늘리고자 했다가 반대에 부딪혀 무산시켰다.

 

 

<참고문헌>

양현아, 「낙태에 관한 다초점 정책의 요청 : 생명권 대 자기결정권의 대립을 넘어」, 한국여성학, Vol.26, No.4, 2010.

이은진, 「낙태죄의 의미 구성에 대한 역사사회학적 고찰-포스트식민 한국사회의 법제, 정책, 담론 검토」, 페미니즘연구, Vol.17, No.2, 20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