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금이씨 살해사건

  • 목록유형 사건
  • 공간 남한
  • 시작일 1992-10-28
  • 내용 1992년 10월 28일 경기도 동두천시 보산동에 있는 미군전용클럽 종업원이던 윤금이씨가 피살된 채 발견되었다. 사체 부검 결과 윤금이의 사인(死因)은 ‘전두부(前頭部) 열창(裂脹)에 의한 실혈(失血)’, 즉 콜라병으로 맞은 앞 얼굴의 함몰 및 과다출혈로 밝혀졌다. 사망 시간은 28일 새벽 2시로 판정되었다. 사건이 발생하자 경찰은 현장에 있던 피묻은 셔츠와 부검 때 맥주병에서 채취한 지문 등 증거물과 목격자 진술 등을 토대로 탐문수사를 편 끝에 10월 31일 오전 0시 30분경 미2사단 정문 앞에서 부대로 귀대하던 케네스 마클 이병을 유력한 용의자로 검거했다. 하지만 경찰은 미군측의 신병인도 요청에 따라 피의자 신문조서도 작성하지 못한 채 신병을 바로 미군측에 인도했다. 검거 당시 그는 범행시의 피묻은 바지와 농구화를 그대로 착용하고 있어 낮은 범죄의식을 드러냈다. 윤금이씨의 시신은 10월 30일 경찰에 의해 가족들의 입회 하에 화장된 후 동두천 상패동 공동묘지가에 뿌려졌으며, 미군당국에서는 위로금으로 60만원을 전달했다. 사건이 알려지면서 11월 4일 동두천에서 지역대책위 결성을 시작으로 11월 5일 40여개 시민사회단체들이 모여 ‘주한미군의 윤금이씨 살해사건 공동대책위원회’(이하 ‘윤금이 공대위’)를 결성하고 살해미군 구속 처벌 등을 요구하며 싸워나갔다. 살인혐의라고 해도 재판 절차가 끝나 형이 확정되기 전까지 한국 사법 당국이 가해자 미군을 구속할 수 없는 게 당시 SOFA 규정이었다. 검찰은 마클 이병을 살인혐의로 기소했으나 신병인도를 받을 수 없어 구속하지 못했다.